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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 맛 집

황남빵보다 맛있었던 보리밥 / 경주숙영식당 맛집 후기

by 마니마니머니1 2026. 8. 11.

경주 숙영식당 외관
경주숙영식당 외관

 

경주 하면 다들 황남빵 아니야? 나도 솔직히 경주 여행 몇 번 다녀오면서 맛있다 맛있다 하는 집들 가봐도 딱히 인상에 남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나한테 경주 맛집은 늘 황남빵 하나였는데... 이번에 지인이 나를 데려간 곳에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인이 "경주 오면 여기 꼭 가야 돼"라면서 데려간 곳은 숙영식당이라는 곳이었다. 경주 대표음식 취급업소로도 지정되어 있다는데, 솔직히 처음 문 앞에 섰을 때는 '여기가?' 싶었다;;;;;  낡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는데 인테리어도 딱히 정돈된 느낌은 아니고 좀 어수선했다. 속으로 '지인이 잘못 데려온 거 아닌가' 하는 의심스러워 눈을 찡그리고 지인을 쳐다봤다.

 

메뉴판을 보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여긴 보리밥이 딱 하나뿐이었다. 선택지가 없다는 게 오히려 신뢰가 쪼끔갈라고 했다. 그만큼 이거 하나로 오래 승부를 봐온 집이라는 뜻이긴 하지만 그래도 먹어봐야 하니까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앗다. 우리는 보리밥이랑 파전을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식당을 한 번 더 둘러봤는데 오래된 나무 기둥이며 손때 묻은 그릇들이 이 집의 연식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드디어 상이 차려지는데, 커다란 양푼이 딱 놓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안에 계절 나물이 이것저것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 같은 익숙한 나물부터 이름도 잘 모르겠는 산나물까지... 종류가 진짜 다양했다. 여기에 고추장이랑 참기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게 이 집 보리밥의 정석이었다.

 

한 숟갈 떠먹는데 "어라 생각보다 맛있네?."

 

조금의 의심과 아직 판명할 수 없는 맛집 판정에 좀 더 먹어봐야 알거같았다.

 

근데 나물 하나하나가 예사 나물이 아니었다. 할머니 손맛 같은? 각각의 향과 식감이 살아있으면서도 서로 잘 어우러져서 계속 손이 갔다. 

 

그리고 파전! 이건 진짜 얘기 안 할 수가 없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 밸런스가 예술이었는데, 여기에 동동주 한 잔을 곁들이니까 조합이 미쳤다. 예전 동학사의 파전이 생각이 났다. 동학사 파전이 인생 파전이었는데....하였튼 파전이랑 동동주는 원래 국룰이라지만 이 집 조합은 미쳤다!

지인한테  "이거 진짜 맛있다"만 계속 반복하면서 먹었다.

 

먹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겉모습만 보고 맛을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낡은 미닫이문에 어수선한 인테리어 뒤에 이렇게 진심 가득한 손맛이 숨어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오히려 이런 곳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진짜 맛집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나올 때쯤엔 처음 들어갈 때 느꼈던 의심은 온데간데없고 배부름과 만족감만 가득했다. 그동안 경주 여행 와서 황남빵만 사 가지고 갔던 날들이 생각 났다.

 

숙영식당의 보리밥이랑 파전, 이거 먹어보지 않고는 경주 맛집을 논하지 말라고 하고 싶을 정도다.

 

이번엔 내가 먼저 지인한테 여기 가자고 할 차례인 듯ㅎㅎ 

 

가격도 은근 착한 편이었다. 보리밥 2인 12000원, 파전 15000이 었다.이렇게 푸짐하게 나오는데 가격까지 부담 없으니까 더 만족스러웠다. 관광지 물가 생각하면서 갔다가 오히려 놀랐던 부분이다. 경주가 워낙 관광지다 보니까 가격 대비 실망스러운 곳들이 많았는데, 숙영식당은 그런 편견을 완전히 깨줬다.

 

자리도 좌식으로 되어있어서 편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었다. 오래된 한옥 느낌이 나는 좌식 공간이라 그런지 괜히 더 정겨운 느낌도 들었다. 시끌벅적하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라 대화하면서 천천히 먹기에도 딱이었다.

 

 

경주 여행 코스 짤 때 보통 대릉원이나 첨성대, 동궁과 월지 같은 유명 관광지 위주로 다니게 되는데, 그 사이사이 밥때 되면 어디서 먹어야 할지 항상 고민이었다.

이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숙영식당 하나만 기억해두면 되니까.

 

주차 공간도 있어서 차 가지고 가기에도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 

 

솔직히 나처럼 겉모습으로 맛집을 판단하던 사람이라면 이 집 가서 한 번 크게 깨닫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테리어에 힘준 예쁜 맛집들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세월이 그대로 묻어있는 오래된 식당에서 먹는 한 끼가 훨씬 더 진하게 남을 때가 있다. 숙영식당이 딱 그런 곳이었다.

 

같이 갔던 지인한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 문 열고 들어갈 생각도 안 했을 텐데, 덕분에 경주에서 또 하나의 인생 맛집을 알게 됐다. 여행은 역시 아는 사람 따라가는 게 진리인 걸 이번에  또 알았다.

 

 

 

 

※ 본 글은 개인적인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솔직한 후기입니다.
식당 정보는 변경될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