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처럼 더운 날엔 시원한 게 자꾸 생각난다.
오늘도 집에서 냉면을 해주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에어컨 바람 맞으면서 시원한 국물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팥을 정말 사랑하는데, 팥이 들어간 거면 뭐든 다 좋아한다.
팥빵, 팥떡, 팥밥 그리고 팥빙수까지!
계절과 상관없이 나의 팥 사랑은 쭉 이어지고 있다.
원래부터 팥을 좋아했던 건 아니고, 둘째를 낳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피가 부족했나?
아무튼 나의 팥 사랑은 주변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모임 자리에서 디저트를 고를 때마다 다들 "또 팥이야?" 한다.
그만큼 나에게 팥은 그냥 재료가 아니라 위로 같은 존재다.
언젠가 부산으로 출장을 갔을 때 저녁을 먹고 나서
현지인이 "오래된 팥빙수집이 있는데 한 번 가볼까요?" 하고 물었다.
시간이 좀 늦어질 것 같은데도 다들 시간 괜찮다고 하셔서 함께 가게 됐다.
부산에 오면 나에게 소개 해 주고 싶었다면서 아주 들떠 보이셨다.
가다 보니 길이 어찌나 꼬불꼬불한지, 혼자서는 도저히 찾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이었다.
조금만 나가면 큰 도로가 있는데 어떻게 이런 길이 숨어 있나 싶을 정도였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산길 아닌 산길을(진짜 산길은 아니었다, 그냥 내 느낌이 그랬다는 거다 ㅎㅎ)
한참 올라갔다.
차 안에서 다들 "진짜 이 길 맞아요?"
맛집은 왜 다 이런 데 숨어 있는 걸까?
이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진짜 맛있는 집일수록 찾아가는 길부터가 하나의 관문 같다.
그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진짜 맛을 만날 자격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드디어 도착해서 주차장이라고 온 곳은 마치 동네 공터처럼 아늑한 곳이었다.
맛집 주변으로 커피숍, 밥집, 또 다른 단팥죽집들이 빙 둘러싸여 있었다.
역시 맛집 옆에는 맛집이 있는 법이다.
이 골목 전체가 하나의 작은 맛집 마을 같았다.
목적지인 팥죽집은 대나무가 성처럼 둘러싸여 있고, 대나무 사이로 동그란 간판에 빨간 글씨로 "팥죽"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치 "내가 부산 제일이야"라고 말하는 듯한 당당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대나무 사이로 들어가니 나무 벤치와 돌 식탁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아주 고즈넉하고, 마치 옛날 찻집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대나무 사이를 스치는 소리까지 들려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도심에서 조금 뒷길인데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곳 같았다.
일행은 먼저 자리를 잡았고, 나는 좋은 곳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주문을 하러 갔다.
이모님이 주문을 받으시는데,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팥빙수도, 단팥죽도 전부 4천 원!!!!!!
우와... 너무 싸잖아...
서울에서 이런 가격이 있을까?월세도 안 나오겠다....
요즘 웬만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이라 몇 번을 다시 확인했을 정도다.
싼 가격에 감동하면서 자리로 돌아가 기다리려고 진동벨을 찾았는데, 그냥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언제 나올 줄 알고 그냥 기다리라는 걸까 싶었는데, 웬걸, 바로 팥빙수와 단팥죽이 나왔다!
왜 진동벨이 필요 없는지 그제야 알았다.
5분도 채 안 걸린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앞에도 뒤에도 손님들이 계속 있었는데 말이다!
이게 바로 빠릿빠릿한 경상도 사람들의 성격인가 싶어서 웃음이 났다.
손이 빠른 건지, 미리 다 만들어 두시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얼른 팥빙수를 먹어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바깥쪽 대나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인증샷부터 남겼다.
이런 분위기 좋은 곳에서는 사진 안 남기면 서운하니까.
팥빙수는 우유 얼음 위에 팥을 소복하게 얹고, 그 위에 보성 녹차가루를 솔솔 뿌려서 나왔다.
한 숟갈 떠먹으니 녹차의 쌉쌀한 맛과 팥의 달콤한 맛이 어우러져서 독특한 맛이 났다.
팥빙수는 큼직한 스텐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여럿이 나눠 먹기 딱 좋은 크기였다.
얼음이 어찌나 곱게 갈렸는지 입에 넣자마자 눈처럼 사르르 녹았다.
단팥죽은 동글동글한 팥 위에 계피가루가 솔솔 올려져 있었다.
계피가루는 언제나 옳다.
단팥죽은 질그릇처럼 작은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딱 내가 좋아하는 사이즈였다.
한입 떠먹으니 팥 본연의 구수한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크면 클수록 좋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는 큰 게 오히려 부담스럽다.
설*의 큰 빙수를 시켜 놓고 다 못 먹고 남기는 것에 비하면, 여기는 정말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 먹을 만큼만, 아쉽지 않을 만큼만 나오는 그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한적하고 너무 좋다고 했더니, 지금이니까 이렇게 한적한 거라고 하셨다.
이렇게 길이 꼬불꼬불한데도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신기하다고 했더니,
아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나 보다 사람들에게 풍기나보다 ~~
숨은 맛집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거기는 일부러 시간을 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 다시 가려면 마음먹고 시간을 비워둬야 한다.
요즘처럼 더운 요즘엔 4천 원짜리 행복이 매일매일 생각이 난다....
아~~~~부산 가고 싶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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